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 “강제징용 당시의 아버지 사진을 보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독립운동과 강제징용의 아픔이 남아있는 역사적 스토리 화제

김민진 기자 승인 2021.07.29 08:31 의견 0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 부친, 최방발 선생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독립운동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진정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의 삶을 조망해보면 슬픔과 비애가 차오른다. 독립운동가 최무길 애국지사의 손녀로서 아버지와 조부의 고단한 삶을 재조명해온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 그는 최근, 아버지 최방발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 발견과 자세한 강제징용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쳐야 했다.

독립운동에 인생을 바친 최무길 애국지사, 남겨진 가족의 삶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는 독립운동에 인생을 바친 최무길 애국지사의 손녀다. 최무길 애국지사는 봉오동 전투를 거쳐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의용군 출신으로 김천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위인이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매진해 온 애국지사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특히 최태선 교수의 아버지 최방발 선생은, 그의 아버지 최무길 선생이 애국지사라는 이유로 강제징용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사진 39번 최방발 선생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도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다는 최방발 선생. 최태선 교수는 그런 아버지와 조부의 행적을 찾아 나서며 강제징용의 아픔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아버지는 약 3년간 강제징용을 가셔서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강제징용 당하기 전에 살았던 김천 지역에 다녀왔는데요. 아버지가 끌려가던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어르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강제징용 1순위였다고 해요.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마구잡이로 끌려가셨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신 어르신 덕분에 아버지의 억울함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처절한 강제징용의 흔적, 젊은 아버지의 모습에 눈시울 붉히기도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한학을 공부하며 아버지와 안중근 의사의 가르침을 되새겼던 최방발 선생. 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최태선 교수는 동 대학교의 최선아 역사학과 교수, 박영희 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아버지와 조부의 행적을 기리는 작업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의 독립 운동가로서의 삶과 안중근 의사를 비롯, 다양한 애국지사들의 업적을 기리는 노래도 발표했던 최태선 교수는 이제 역사학적, 학문적 사료로 아버지와 조부의 행적을 남기기 위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최방발 선생의 젊은 시절 사진이 발견되어 최태선 교수를 비롯한 가족들의 그리움이 애틋한 감동으로 밀려온다.

“박영희 교수님이 저의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모으다가 발견한 사진입니다. 서정만이라는 사람이 가족에게 보낸 사진인데요. 당시 29~30세 가량 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어요. 사실 저와 제 형제들을 비롯해 살아있는 가족들 가운데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진은 대부분 50~60대에 접어든 이후의 사진이고 그마저도 몇 장 없거든요. 그런데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온전히 찍힌 사진이 발견된 겁니다. 변함없는 모습에 반갑기도 하고, 기뻤지만, 얼굴 가득 묻어있는 강제징용의 흔적이 보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가(一家)의 역사가 깃든 김천에서. 노래할 날을 꿈꾸며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강제징용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접하고 있지만, 단순히 단어로 접하는 것과 그 실상을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는 최태선 교수는 아버지의 강제징용으로 인한 아픔이,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황희정승 19대 외손녀 최태선 교수 (왼쪽 세번 째)

당사자에게는 트라우마지만, 역사적으로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이에 최태선 교수는 자신의 뿌리를 되새겨보며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7월 20일, 김천을 찾았다. 김천은 아버지와 조부의 고향임과 동시에 최태선 일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특히 영친왕의 보모로 전 재산을 기부해 김천고등학교를 세운 최송설당 할머니의 행적을 기록한 기념관 방문은 최태선 교수에게 큰 위로와 안식을 줬다.

“최송설당 할머니는 저희의 선조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30만 원 가량을 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내놓은 분입니다. 그래서 김천고등학교에서는 지금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6월 16일이 되면 기제사를 지내고 있죠. 올해는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했지만, 내년부터는 후손인 저도 이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낼 예정입니다.”

이 외에도 할아버지 최무길 애국지사가 만세운동을 주도한 평화시장, 최방발 아버지의 비통함이 서린 역사 등 김천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와 함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김천시 주관으로 평화시장이나 역사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자는 논의도 하고 왔다.

강제징용과 독립운동. 모두 숭고하고 올바른 일이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교과서 속 단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최태선 교수의 가족은 아직도 조부의 독립운동과 아버지의 강제징용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 당시, 아버지의 굳어있는 모습은 높은 의식이 있어도 처참한 노예가 되어야 했습니다. 잊어야 할 일도 있지만 잊어서 안 될 일도 있습니다. 역사적 국난에 따르는 저의 눈물은 한 개인의 눈물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국가의 눈물입니다. 미래에 다시는 절대 있어서 안될 일이며 후대에 민족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는데 중요한 인식을 심어 줘야 겠습니다”

조부와 아버지의 일생을 통해 역사 속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최태선 교수. 역사적 가치가 깃든 그녀의 노력이 알찬 결실을 맺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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