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서울아 평양아’, ‘평생을 같이 갈사람’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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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서울아 평양아’, ‘평생을 같이 갈사람’ 인기
  • 이현재 기자
  • 승인 2019.06.1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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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최무길 열사의 손녀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가수 최교수)

 

노래 ‘서울아 평양아’, ‘평생을 같이 갈사람’ 인기

독립유공자 최무길 열사의 손녀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가수 최교수) 

멜론, 바이브, 유튜브 등 각종 음원 사이트에 올라

 
[이코노미타임21=이현재 기자] “노래는 외로움을 달래는 요소가 된다.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내면의 변화와 삶의 의욕을 고취시켜주기도 한다”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가수 최교수) 스스로에게는 버킷리스트를 이룬 꿈의 실현, 그리고 사회에는 재능기부로 그녀의 노래 ‘서울아, 평양아’, ‘평생을 같이 갈사람’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향을 그리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의미를 담은 노래도 준비 중이다.

 

▲ © 가수 최교수 음반앨범

 

멈추지 않는 꿈의 도전, 아름다운 신화 이뤄 내   

 
지난 5월16일 멜론과 바이브 등 각종 음원 사이트에 서원대학교 최태선 교수(가수 최교수)의 노래, 트로트 ‘서울아 평양아’, ‘평생을 같이 갈사람’이 올라가 화제가 됐다.

 

최교수는 또 한 번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최교수의 제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교수님의 모습이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며 “교수님의 도전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최교수는 “언제나 긍정적 사고로 할 수 있다는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못 이룰 것이 없다”며 “제자들에게 ‘공부하라. 도전하라’는 열 마디 말 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재능기부로 긍정의 에너지 널리 나누고 싶어

 
최교수는 음반이 발매되고 음원사이트에도 오른 만큼 가수로서의 역할도 다하고 싶다고 소회했다. 사회의 어둡고 우울한 곳을 방문해 흥겨운 노래로 긍정의 에너지를 채워주고 싶다는 그녀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최무길 열사다.

 

내 몸에도 그 피가 흐르나 보다. 나의 재능 기부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는데 일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지난 5월 장애인의 날 행사와 독립운동가 모임에 참석해 노래를 부르며 재능기부를 실천했다.

 

                  ▲  © 가수 최교수 노래 열창

 

그녀의 노래 ‘서울아 평양아’는 우리사회가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통일을 꿈꾸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가며 동반자의 자세로 함께 가면 좋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평생을 같이 갈사람’은 우리사회가 밝은 모습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모아 가고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처럼 의식과 정신을 노래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의 할아버지 최무길 열사는 김천에서 활약한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였다. 당시 김천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독립운동이 확산되었고 그로 인해 임시정부수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1919년 3월 11일 김천 장날의 만세 시위가 무산되고 만세 시위가 점차 확산되어 가던 4월 5일 저녁 8시 최무길 열사는 김천시 대화정(현 평화동)에 있는 헌병 분대에 잠입해 ‘조선독립만세’ 삼창을 외치다 그 자리에서 검거됐다.

 

20일 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부터 태형 90대를 선고 받았고, 그 후로도 우리 국민들을 4차례(1,124명, 540명, 370명, 240명) 소집해 일본병사 3,300명 앞에서 독립만세 운동으로 맞서 싸우셨다. 평생동안 독립 운동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가 비로소 1992년 드러나 열사로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평생을 독립운동을 하고 결국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었지만 최교수는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본인의 힘든 역경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최교수는 “그동안 증거부족으로 할아버지의 업적을 아버지만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며 “아버지의 생전 소원이 이루어져 다행이고 조부의 피를 이어받아 독립 운동은 아니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위해 살아있는 동안에 저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것이 최무길 열사의 손녀이자 아버지의 딸 그리고 두 아이의 자랑스러운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 일 것”이라고 말했다.

  

                  ▲ © 학생들과 함께



‘남들이 놀 때 일하고 남들이 일하면 더 일해야 한다’

 
최태선 교수는 사실 어려운 유년시절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하다. 다섯 살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그녀는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도 못돼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22살에 김천대학을 졸업했다.

 

17살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사회에 발을 내디딘 최교수 혼자 힘으로 전문학사를 이뤄냈고  보험 FP까지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가난한 지게꾼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평생을 공부하면서 야학당을 열어 동네 어른들을 모아 한학을 가르치고 의식을 높여 온 학자의 모습을 듣고 보고 자라온 탓에 결혼 후 늦은 나이에도 회사일과 동시에 못다한 학업에 도전장을 던지게 된다.

 

인생 역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되는 최교수는 일과 병행하여 학업에 몰두 했는데, 37살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서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41살에 충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그리고 45살에 청주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꿈을 이루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사회적 지위도 함께 올랐다. 한화생명 사원교육 담당자에서 청원지점 지점장 경력으로 또 교촌치킨 가맹점 CEO에서 교촌F&B(주)경북북부지사장 경력으로 그리고 현재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된 것이다.

 

▲ © 가수 최교수

 

최교수는 ‘남들이 놀 때 일하고 남들이 일하면 더 일해야 한다’는 일에 대한 남다른 각오와 열정으로 지금까지 휴가 한 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아버지에게 배운 것

 
휴가가 주어져도 그 시간에 그녀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쓰거나 주로 개인적인 일에 몰두했다. 최교수는 일종의 자기 관리법이라며 하루를 쉬면 후유증이 생기고 한번 편해지면 더 편해지고 싶고, 놀면 계속 놀고 싶어지기 때문에 논다는 것을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아버지 말씀에 ‘어차피 죽으면 우리 몸은 긴 시간 편안해 지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 육신을 움직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세월은 화살이다’라고 알려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녀 나이 28살에 노령의 연세로 돌아가신 부친이 인생의 멘토였다고 덧붙였다.

 

최교수는 1965년 6월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용호리(옛 주소)에서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가 당시 53세였고 5세 때 어머니는 병환으로 세상을 뜨셨다. 그녀와 아버지의 나이 차이가 무려 53살. 그래서였는지 아버지는 최교수를 귀애하셨다. 최 교수의 기억에 아버지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잘한다, 대견하다, 똑똑하다, 영특하다, 착하다, 기특하다” 아버지 덕분에 긍정의 힘을 담아 칭찬 자체가 인성교육이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칭찬을 얼마나 하시는지 세었는데 하루에 100번을 넘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깨울 때도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일어날 때를 알려줬을 뿐 “일어나”라는 재촉조차 하지 않았고 “야”라는 호칭은 한번도 부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 나이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애착은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최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한테 배운 인간존중, 사랑과 포용, 이해와 배려로 무장된 자신감으로 학생들한테 못해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에 더 큰 격려와 칭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최교수는 서원대학교에서 취업전담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학생들의 취업활동을 도와 주고 진로를 함께 찾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무엇보다 기업의 취업 알선에도 적극적이다.

 

“학생들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나서야죠”, “학생들이 하기 힘든 건 교수가 해야지요”라고 말하는 최교수는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최 교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누구 보다 빠른 성공을 이루며 지난 2009년, 그녀의 인생 역경을 저술한 <최태선의 아름다운 변화>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책을 집필하기 위해 1년 동안 새벽 3시면 기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나온 것이다.

 

꿈결에서 엄마를 만나는 어린 소녀의 그리움과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 그리고 힘들었던 과거를 이겨내는 불굴의 성공신화가 담긴 이 책은 많은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강의는 직업이고 노래는 천직이다”라고 밝힌 최교수는 자신의 긍정 에너지를 힘이 닿는 한 많은 이들과 나눌 것이라고 했다. ‘재능 기부’ 이것이 최교수가 그리는 그녀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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