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心天) 송승연 석채화 작가, “예술이 구원해 준 빛나는 나의 라이프, 문화예술에 답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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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心天) 송승연 석채화 작가, “예술이 구원해 준 빛나는 나의 라이프, 문화예술에 답례할 것”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0.05.02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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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영원한 예술, 석채화가 화답하다
심천 송승연 작가
심천 송승연 작가

[포스트21=김민진 기자] 우리의 삶에 예술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옛날 보릿고개 시절을 겪었던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예술이 밥 먹여주느냐며 핀잔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아 문화예술 분야는 전문적인 직업으로 변했고 그에 따른 위상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영혼을 살찌우고 한 사람의 인생을 구원해줬다’고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 바로 자신의 삶 자체가 예술이 된 석채화 작가, 심천(心天) 송승연이다.

고된 인내와 고통 속에서 탄생하는 영원한 예술 석채화

심천(心天) 송승연 작가는 ‘석채화’라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석채화는 400년 전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진 화법으로 가공된 돌가루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예술이다.

돌로 그림을 그리면 투박하고 거칠 것이라는 상식과 달리 석채화는 다른 화법 대비 굉장히 탁월한 질감과 빛깔을 자랑한다. 이 덕분에 중국에서는 ‘보석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보석화라 부르기도 했으며, 만년동안 색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만년화’로 불리기도 했다.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만년화’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석채화는 그 색채와 빛깔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든, 시골 어린아이의 그림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변질되기 마련이다.

종이 자체가 낡아져서 혹은 물감의 색이 바래서, 어떤 이유에서든 그림은 처음 탄생할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하지만 석채화는 처음의 그 빛깔과 선이 퇴색되는 일이 없다. 그야말로 영원한 예술인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예술로 유명한 석채화지만 이 그림은 매우 난이도가 높은 고급기술입니다. 덧칠은 아예 불가능하고 수정도 무척 어렵죠. 한 번 손에서 떠난 선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예술이죠.”

심천 송승연 작가의 설명이다. 이미 존재하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나 기존 그림들과 달리 석채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직접 원료를 채취하고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인내와 고통을 요하는 작업이라서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선 자연에서 원석을 채취 및 가공한다. 빻아서 가루가 된 돌을 곱게 채고 나면 건조하여 이를 토대로 원료를 만들고 이 원료에 소정의 작업을 거쳐 석채화의 물감이 탄생한다.

석채화는 원료로 ‘어떤 돌을 사용하고 어떤 가공을 거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원료를 만드는 과정 역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직접 챙겨야 한다. 이토록 고된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영원히 변치 않는 그림, 석채화가 탄생한다.

석채화의 대가 김기철 화백과 그의 수제자, 송승연 작가

석채화는 고도의 전문기술을 필요로 하는 화법이다. 작업과정도 결코 녹록치 않아 현재 전 세계를 기준으로 봐도 석채화 전문 화가는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이다.

(좌)김기철 화백 / 송승연 작가
(좌)김기철 화백 / 송승연 작가

심천(心天) 송승연 작가의 스승, 김기철 화백은 그렇게 드문 석채화 전문 화가 중 대가의 칭호를 받는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전 세계에서 천년 원석 자체를 가공해서 작품을 만드는 이는 오직 김기철 화백 한 명 뿐이다.

김기철 화백의 그림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서 호주 시드니 빈센트 아트 갤러리, 하와이 컨벤션 센터, 태국 파타야 호텔, 필리핀 국립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전시회에 초청받은 바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 김기철 화백은 한국 석채화의 보물 같은 존재로 호평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김기철 화백에게 직접 사사받아 그 재능을 뒤늦게 꽃피우고 있는 이가 바로 심천 송승연 작가다.

40대 후반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석채화를 배운 송승연 작가지만 그는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10년도 안 되어 김기철 화백의 수제자로 인연을 맺었다. 미래가 유망한 석채화 작가로 우뚝 선 것이다.

충남 금산에 거주하는 송승연 작가는 서울평화국제미술제 최우수상, 한국현대문화미술 최우수상, 대한민국창작비엔날레 금상을 수상했으며 가와사키 국제 아시아미술전 등에서 작품이 호평 받으며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석채화’ 세 글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송승연 작가. 그는 스승인 김기철 화백의 그림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며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밝혔다.

심천 송승연 작가

“제 인생은 스승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스승님을 만나기 전의 저는 살아가고는 있지만 빈 껍데기로 살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언제나 뭔가 공허한 느낌이었거든요. 스승님의 그림을 보면서 이 공허함이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석채화가 차지한 거죠. 옛말에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말인데요. 스승님은 제 영혼의 아버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송승연 작가는 김기철 화백의 그림을 통해 절망의 늪과 같았던 자신의 영혼이 구제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고뇌에 찬 영혼, 스승과의 만남으로 구원받다

송승연 작가의 인생은 다른 사람과 조금 달랐다. 어려서부터 큰 병으로 고생했던 그에게 젊음의 활기와 꿈은 사치나 다름이 없었고, 20~30대 때는 병상에 누워 언제쯤 죽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었다고 한다.

“한 25년 정도? 병마와 싸웠던 것 같습니다. 청춘을 통째로 날린거죠. 그 때 저를 살리겠다고 아버지께서 논 8마지기를 팔아서 큰 수술을 해 주셨습니다. 몇 년 동안 아예 걸어다니질 못했죠. 하루는 30cm짜리 불주사를 몸에 넣는데, 차라리 죽고 싶더군요. 부모님께도 폐만 끼치는 것 같고. 그렇게 절망에 휩싸여 밖을 봤는데, 반대편에서 두 다리가 절단 되어 고무다리를 하신 장애인 어르신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살겠다며 돌아다니시는 걸 봤습니다. 그걸 보고 적어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간신히 병마를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의지하던 큰 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셨고 이어서 아버지도 돌아가시게 되었다.

삼대가 같이 모여 살며 슬픔을 위로하고 남은 이들은 살아나갔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커다란 기둥을 잃은 듯, 헛헛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런 송승연 작가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언제나 예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비록 생계에 치여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픈 와중에도 꾸준히 비엔날레의 작품을 감상해 왔고 도자기, 동양화, 민화 등을 보며 슬픔을 위로하고는 했다. 그런 와중에 무주에 도착해 보게 된 것이 바로 김기철 화백의 그림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수 많은 작품을 보면서도 마음 속에 무언가 예술에 대한 알 수 없는 갈증이 타오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스승님의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혼 전체에 기쁨과 감동이 충만한.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그 길로 송승연 작가는 김기철 화백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했고, 김기철 화백은 송승연 작가의 굴곡 많은 인생을 듣고 그와 같은 사람이 예술을 해야 한다며 적극 지원해 주었다.

행복과 기쁨 선사할 작품 위해 최선 다해

스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석채화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송승연 작가. 심천(心天)이라는 호는 마음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본인이 스승의 작품을 보고 영혼의 깨우침을 얻은 것처럼,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심천 송승연 작가 작품

어렵게 시작한 석채화였지만 배우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처음 두 달 동안은 매일 5시간이 넘게 선만 그렸습니다. 석채화는 선 한 번 잘못 그리면 그림 전체가 망가지기 때문에 당연히 배워야 하는 일이었지만, 처음에는 너무나 단순한 작업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이미 석채화가 제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죠. 지금 뒤돌아 생각해 보면 당시의 그 인내와 고통이 없었다면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도 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스승님께서는 제게 그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죠.”

심천(心天) 송승연 작가는 우리나라의 상징과 관계된 그림들에 집중하고 있다. 호랑이, 용, 독수리를 비롯한 민화를 석채화로 그릴 예정이며 추상화나 태극기도 석채화로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다는 송승연 작가.

그의 꿈은 자신이 스승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영혼의 떨림, 기쁨과 감동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사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제가 어두운 영혼의 세계에서 스승님의 작품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 사랑과 행복, 위안과 감동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송승연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진흙 속에서 고귀한 진주가 탄생한다’는 진리다. 슬픔과 고통, 절망을 승화하여 기쁨과 행복, 사랑과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송승연 작가. 그의 삶의 스토리가 세인들의 가슴에 잠들어 있는 감동을 조용히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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