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한국의 얼과 정신, 도자기에 녹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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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한국의 얼과 정신, 도자기에 녹여내다’ 
  • 박윤선 기자
  • 승인 2020.07.05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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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세계 유일무이한 ‘평면도자’ 탄생

[포스트21=박윤선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관이 위치한 진부역에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의 ‘평면도자’. 그가 평생을 통해 완성한 평면도자는 일반 도자기와는 달리 평평한 모양으로, 구어 내는 방식은 일반 도자기와 같지만 그 과정은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처음 말리고 초벌하고 다시 재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크기보다 17%~20% 수축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둥근 형태의 도자기는 크기도 작고 둥글어서 수축할 때 모양의 변형이 적지만 이호영의 평면도자는 크기가 2m에 이르는 대형 평면이기 때문에 말리는 과정과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금이 가거나 뒤틀려지고 깨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도자기를 굽는 장인들은 하나같이 대형 평면도자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호영 명인은 누구도 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고 결국 완벽에 가까운 평면도자를 탄생시켰다. 물론 도자기를 굽는 다른 사람들도 작은 크기의 평면제작은 가능하지만 그 크기는 고작 30~ 60cm 정도에 불과하다. 

평창동계 올림픽 이후 이호영 명인의 작품은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호국광장에서 빛을 발한다. 가로세로 50cm의 평면도자 4,000여 개를 마치 퍼즐 조각처럼 붙여 높이 5미터*길이 200미터에 이르는 거대 벽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이 작품의 경우 그냥 평면 도자기를 굽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욱 높다. 그 이유는 도자기에 노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화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면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들 4,000장이 서로 정교하게 일치되어야 해서 그림의 색까지 하나하나 살피며 불의 강약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등 그 과정은 고난 자체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네스북에 등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세계 최고 규모의 작품이 되었다. 

이후 이호영 명인은 2019년 5월 서울강남 봉은사에 초대되어 평면도자 20여 점과 이호영 유약의 별밤 도자기를 전시했다. 

‘선(禪) 흙에담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서 이호영 명인만의 독창적인 유약과 불의 조화로 완성된 작품인 푸른 빛의 도자기, 상감청자기법을 활용한 평면도자, 마애여래상으로 불심을 표현한 작품 등을 선보였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도예 명인 가문

지금까지 30년 이상 예술인으로 활동하며 서양화로 시작해 전통도자, 조각, 평면도자 등 다양한 영역으로 스펙트럼을 넓혀온 이호영 명인의 집안은 외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를 거쳐 3대째 도공의 길을 걷고 있는 도예 명가이다. 

현재 그의 형과 외갓집 가족들 모두가 도공으로 외조부 고만수 선생, 작은집 외조부 고만식 선생이 칠기 가마를 운영했다. 

그의 아버지 고(故) 이현승 선생도 일제시대와 6.25동란에도 꿋꿋하게 가마를 지켜왔고, 해강 유근영, 신상호, 이준희 등 원로 도예가들이 그 가마를 거쳐 작품 활동을 펼쳤다. 

가마터와 도예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었던 이호영 명인은 198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도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던 것은 아니다. 

왼쪽 3번 째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왼쪽 3번 째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이호영 명인은 항상 도자기를 만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작품을 빚어도 저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그냥 내가 보지 못한 도자기, 그 미지의 세계를 담고 싶은데 혼신의 힘으로 만들어 놓고 또 만족하지 못하니 고난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숱한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고 마침내 완성한 분야가 평면도자이다. 대형 평면도자는 흙을 완전히 익히는 기법을 사용한다. 즉, 도자기를 자화시키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사용하는데 그것도 건식이 아닌 습식으로 제작한다. 

이는 외국에서 도자기를 자화시키지 않고 도기처럼 겉만 익힌다거나 가루를 반죽하여 건식으로 편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 겉모습만 평면도자로 만드는 방법과 비교된다. 

그런 방식으로 제작할 경우 흙이 수축될 때 변형이 적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호영 명인이 만드는 평면도자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완전히 자화된 습식 평면도자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 평면도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려는 지고한 이호영 명인의 열정 때문이다. 

“고려청자는 500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평면도자에도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500년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잃지 않는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뤄진 것이지요.” 

활용도 높은 작품 만들고자 노력

우리나라 칠기(漆器)는 까만 전통 도자기로 전후(戰後)에는 청자 흙을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흙으로 청자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옹기의 경우 흙을 수비하지 않고 그냥 만들지만 칠기의 경우는 청자처럼 흙을 수비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그래서 칠기가마를 가지고 계셨던 선친의 흙을 사용하여 해강 선생 등이 청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칠기는 옛날 부엌의 찬장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조그맣고 까만 도자기로 유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간장, 고추장 같은 장이나 술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칠기의 경우 6.25전만해도 대부분 집안에서 사용할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지만,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다. 옹기와 칠기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옹기는 한번만 굽고, 칠기는 초벌과 재벌을 한다. 

또 옹기는 수비(점토만들기)를 하지 않지만 칠기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흙을 수비해서 사용한다. 옹기는 도기고 칠기는 흙이 자화되어 자기에 속한다. 

칠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민도자기로 많이 사용되었고 도자기의 역사에서 볼 때 그 의미가 큰데 칠기에 관한 연구는 너무도 미흡하다. 이호영 명인은 칠기가마를 보존하고 명맥을 이어왔던 집안의 후손으로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이호영 명인은 우리나라 칠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이를 재현하고 그 성과를 토대로 칠기 전시회를 개최하려고 계획 중이다. 더 나아가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활용도 높은 평면도자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도자기는 그저 감상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러한 틀을 깨고 평면도자가 작품임과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첨단 소재로서의 도자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판이기에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불교 문화재를 평면도자로 복원제작하면 보존이 쉬워지기에 이를 대중에 공개하는 작업을 해보고자 합니다.”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한얼도예 이호영 명인 작품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성남모란민속공예전국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호영 명인은 2014년 한국예술총연합회가 선정한 명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 도예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어내고자 노력 중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적인 도자기 작품을 만들려는 이호영 명인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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