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관장(화백) 독창적인 작품세계, 구름천사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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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관장(화백) 독창적인 작품세계, 구름천사 만들다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0.08.04 0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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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미술가로 정평
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관장(화백) 

[포스트21=김민진 기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시골 평상, 혹은 이름 모를 풀이 흐드러진 들판에 누워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감상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순수함과 애틋함이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예술로 승화시켜 주목을 받고 있는 미술가가 있다. 바로 노의웅 미술관의 관장이자, 미술에 인생을 바친 예술가, 노의웅 화백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노의웅 미술관,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아

광주시 남구 양과동 수춘마을. 큰 길에서 조금만 굽어진 골목을 돌아서면 독특한 모습을 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건물이지만, 외벽에 구름 모양을 닮은 ‘노의웅 미술관’이라는 간판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이 바로 노 화백이 개인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노의웅 미술관이다. 노 화백 평생의 염원이 담긴 이 미술관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반적인 미술관의 주 수입원인 대관업무는 아예 진행하지 않고, 2개월마다 내부에 있는 작품이 교체된다. 대관을 진행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이 미술관의 존재를 환영하는 눈치다. 

“2018년 개관해서 이제 2년째에 접어들고 있는데요. 저와 가족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기획한 거라서 애초에 대관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용을 받는 대관은 진행하지 않지만, 지역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도 개최하고 매일 관람객과 일정 시간 소통도 나누면서 지역의 명물로 거듭나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미술관

노 화백의 말처럼 노의웅 미술관에는 오직 노 화백 가족들의 작품만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건립 이전에도 한가족 5인전, 6인전, 부부전 등 기획 전시를 자주 했을 정도로 노 화백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전시를 추구한다. 

노 화백의 부인인 임순임씨는 서양화를 전공한 미술가이고, 5남매 중 세 딸들은 각각 공예, 서양화, 조각을 전공했다. 최근에는 손녀딸도 미대에 진학하여 가족의 예술적 자질을 물려받고 있다. 

“제 이름을 딴 미술관은 앞으로 제 딸들과 손녀들이 대를 이어 운영해 갈 겁니다. 앞으로도 대관이나 작품 판매는 없이 말이죠. 단순히 우리 가족의 미술 작품들을 소개하고 공유하며 예술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매일 10시간 이상씩 작품 활동에 매진하다 

노 화백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인 어린 시절부터 70대 후반을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시도 미술과 떨어진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구름과 하늘을 배경으로 바닥에 낙서를 하며 놀았고,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노 화백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대학원을 마치고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미술 꿈나무들을 지도했다. 

평생 미술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만큼 은퇴한 이후에는 다른 삶을 살라고 권하는 지인들도 있었으나, 노 화백은 죽기 전까지 미술에 전념하겠다며 미술관을 개관하기까지 했다. 

“평생 미술로 삶을 살아 온 사람이 은퇴해서 미술을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혼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 봐도 머릿 속에는 내내 작품에 대한 생각만 떠올라요. 천생 미술인 인거죠. 뭐.” 

너털웃음을 짓는 노 화백은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10시간 이상을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 화백이지만, 그는 한 번도 작품을 판매해 본 적이 없다. 

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미술관

혹시나 스스로의 작품 세계가 상업성에 오염될까 우려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는 노 화백의 작품세계가 그의 순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 속에 숨겨진 노 화백의 순수성, 구름천사 작품으로 승화 되다 

노 화백의 작품은 흔히 ‘구름 천사’로 불린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천사를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로 노 화백이 직접 만든 단어다. 그는 이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40대 초반부터 무수한 고민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40대 초반까지는 저 역시 다른 일반 작가들, 미술 학도들처럼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고, 풍경화를 그리는 등 일반적인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교수가 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래도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이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인데, 나만의 작품 세계 하나 없어야 되겠나. 그런 생각으로 나를 상징하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노 화백이 작품세계를 구축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유일한 것, 독창적인 것이었다. 

어딘가에 있는 작품이어서는 안되고, 누군가가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안된다. 오직 노 화백만이 그릴 수 있고, 노 화백만의 철학이 들어간 그림. 그런 그림을 위해 연구를 한 지 수년. 마침내 노 화백은 자신의 추억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작품 세계를 찾아내니, 그것이 바로 구름 천사였다. 

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관장(화백)
노의웅 미술관, 노의웅 관장(화백)

“구름 천사는 제가 느끼는 여러 감정, 생각들을 어린 시절 보았던 하늘의 구름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연인의 사랑, 고향의 따스함, 어머니의 포용, 모든 걸 구름으로 표현해 냈어요. 특히 제가 살던 고향이 재개발로 완전히 달라져 버려서 마음 속에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데요. 이 부분을 작품으로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은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노 화백은 창작의 고통을,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고, 몸 속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 철학을 어떻게든 드러내는 일. 

고통스럽고 지난한 작업이지만, 모든 예술가들은 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노 화백. 그는 예술이 힘겨운 시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꼭 찾아나가길 주문하고 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작가든 예술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내가 느낀 것을 고스란히 표현해 낼 수 있는 것. 이게 확실해야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오래도록 예술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고되고, 어렵겠지만, 한국 미술을 이끌 예술 꿈나무들이 꼭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내길 소원합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노의웅 화백. 예술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과 그의 뒤를 따라가는 후학들에게 귀감을 사고 있다. 삭막해져 가는 현대시대. 노 화백의 작품에서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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