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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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삶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1.03.17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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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 사진 픽사베이
아인슈타인 / 사진 픽사베이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우리는 오늘날 과학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는 누구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세상을 떠난 아인슈타인.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업적을 세웠기에 과학의 아버지라는 영광된 칭호를 얻은 것일까? 그의 생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간략히 살펴본 아인슈타인의 생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의 소도시 울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4살까지 말을 어눌하게 하고, 9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을 깨우칠 정도로 발육이 늦은 아이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아버지가 사업을 실패하여 그다지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타고난 천재성은 빛을 발해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으며 수학과 물리학에 전념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수학교사, 특허청 사무원으로 연명하다가 탁월한 연구업적이 인정되어 30세에 취리히 공과대학에 조교수로 취임을 하게 된다. 

34세에 이르러 베를린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독일인 교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반전 성명서를 냈지만, 이때까지 아인슈타인은 흔한 물리학자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40세.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이전에 발표한 논문이 굉장히 독창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논문이라는 학계의 평을 받았고, 42세에는 빛과 양자에 관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1930년대에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었고, 아인슈타인은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 프레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한다. 

말년에는 연구활동에 매진하면서 다양한 업적을 세웠는데,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으며 민족주의와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1955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상대성 이론으로 일약 과학스타로 부상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은 엄청나게 많다. 일단 그에게 노벨상을 선사한 광전효과는 빛의 에너지가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으로 훗날의 양자역학을 이뤄내는 단초가 된 논문이다. 여기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상대성 이론은 그를 일약 과학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대성 이론은 이미 GPS나 도량형 등 우리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론으로 일반인들은 그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학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력파, 보스, 아인슈타인 통계, EPR 역설, 통일장 이론 등 일반인은 단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물리학, 수학적 이론을 무수히 연구했던 이가 아인슈타인이다. 

생전에 노벨상을 2번이나 탔을 정도로 그 업적이 인정된 인물이지만, 오히려 물리학에서는 아인슈타인 사후에 그의 연구가 더욱 많이 응용되면서 업적이 재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신은 난해하지만, 심술궂진 않다.” 등등 시대를 관통하는 어록과 일화들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의 천재였다는 아인슈타인은 명언과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천재답게 워낙 괴짜같은 행동을 자주했지만 이웃집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할아버지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은 난해하지만, 심술궂진 않다.”, “삶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거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등 시대와 종교, 과학을 관통하는 어록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인물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사실 그는 독실한 평화주의자로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해 전쟁에 사용할 것을 우려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할 것을 조언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여담으로 훗날 원폭 투하의 참상을 알게 된 뒤로는 원자폭탄이 그 같은 비극을 초래하는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서한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천재는 곧 괴짜라는 편견의 대명사, 과학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여러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지만, 정작 그의 생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반추하는 이들은 드물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위인들 역시 이러한 편견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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