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태선 교수, ‘대한국인 안중근’을 포함한 독립투사들의 노래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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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태선 교수, ‘대한국인 안중근’을 포함한 독립투사들의 노래 발매
  • 김민진 기자
  • 승인 2021.03.30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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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독립투사들의 삶을 담은 희망의 노래로 눈길 

[포스트21 뉴스=김민진 기자]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민족을 단결케 하는 힘이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에 모두가 힘겨워하는 이때, 가수 최태선 교수는 과거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친 선조들의 삶을 노래에 담아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길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의군 최무길’, ‘강제징용 최방발’. 독립운동가 집안의 스토리로 이어진 앨범

지난 3월 중순, 노래하는 교수, 가수 최태선 교수는 안용희 작곡가와 공동으로 제작한 스폐셜 앨범을 발매했다. 유튜브와 멜론에서 동시에 발매된 앨범의 수록곡은 총 8곡. 같은 노래를 최태선 교수가 노래한 버전과 안용희 작곡가가 섹소폰 연주한 버전을 실었다.

‘대한국인 안중근’, ‘대한의군 최무길’, ‘강제징용 최방발’, ‘보고싶은 아버지’ 총 4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타 대중가요 앨범과 달리 모든 노래의 스토리가 이어져 더욱 큰 의미를 선사하는 앨범이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서 시작해 제 조부인 독립운동가 최무길 열사 그리고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징용에 끌려가기까지 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를 존경했던 제 아버지 최방발. 거기서 이어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삶까지, 기나긴 스토리를 노래에 담았습니다.”

가수 최태선 교수
가수 최태선 교수

현재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최태선 교수는 독립운동가 최무길 열사의 후손이다. 최무길 열사는 1919년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헌병 부대 앞에서 조선독립만세 삼창을 외치고 검거되었던 인물로 태형 90대를 맞은 후에도 만주로, 하얼빈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던 독립투사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면서 최무길 열사의 공로는 역사에 온전히 기록되었다.

힘겨웠지만 위풍당당한 마음으로 거사에 임한 안중근 의사의 심정 담아

앨범은 거사에 나서는 안중근 의사의 심정을 찾아 시작된다. 하얼빈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쫓으며 최태선 교수가 평생 존경 해왔던 아버지 최방발 선생은, 최태선 교수가 어릴 적, 항상 안중근 의사의 책을 읽으며 감탄을 거듭했다고 한다. 최방발 선생의 마음 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곧 최무길 열사였으며 최무길 열사는 곧 안중근 의사였을 것이라고 최태선 교수는 짐작한다. 

“민족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낯선 이들이 가득한 땅에서 대한독립만세, 코리아 우레를 외쳤던 안중근 의사의 심정을 고스란히 노래에 담았습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민족의 소원을 위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의 열정과 당당함을 웅장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당시 독립을 원했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복장과 무대의상에까지 신경 쓰며 녹음을 준비했다. 앨범이 발매되고 나서는 안용희 작곡가와 함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노래 한 소절을 들려드리고 할아버지가 계시는 현충원에도 다녀왔다.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의 끈이 되길...”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취업을 도와주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매주 서울에 올라와 녹음작업에 힘썼다. 이 앨범이 운명과 같았기에 힘겨움도 몰랐다는 최태선 교수는 평소에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생을 간직하며 스스로의 길을 되돌아보곤 했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징용에 끌려가 3년이나 전쟁을 경험하고 왔지만 한 번도 할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평생 할아버지의 공로를 밝혀내기 위해 힘쓰셨어요. 그렇다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생을 지켜보고 들어온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고민이 항상 있었습니다.”

한편,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을 대중들에게 전하고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이 위로와 힘을 얻기를 원했던 안용희 작곡가는 1993년부터 관련 곡을 준비해두었으나, 곡을 부를 가수를 찾지 못했었다. 

역사적 의미는 무엇보다 큰 작업이지만, 결코 큰돈이 되기는 힘든 일이었기에 나서서 부를 가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과 마음이 딱 맞는 최태선 교수를 만났고, 둘의 열망이 시너지를 일으켜 최고의 앨범이 제작, 발매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모든 국민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았어요. 그분들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되새기다 보면 우리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지킬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마음과 공로가 글이나 사진뿐만 아니라 노래로도 많이 불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앨범을 제작했다는 최태선 교수. 운명과 같은 작업을 이어나간 그녀의 노래가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들에게 다시금 희망의 끈을 선사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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