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거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어떻게 누르고 대세가 됐을까

최현종 기자 승인 2020.04.21 09:01 | 최종 수정 2020.04.21 09:06 의견 0

[포스트21=최현종 기자] 많은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제작진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신념을 시청자에게 강요했다. 물의를 일으킨 출연진을 계속 섭외하고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내보냈다.

방송 제작진과 출연진이 제왕처럼 군림하며 프로그램 베끼기에 급급했으니 시청자가 유튜브로 떠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시청자는 TV 시청 대안으로 유튜브를 선택했다.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가 유튜브에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만 있는 캐릭터

지난해 3월 21일 EBS는 자이언트 펭TV 채널을 개설했다. 거대한 펭귄 탈을 쓰고 등장한 펭수는 방송계의 크로스오버 열풍을 일으켰다.

10분 남짓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 펭수는 그 인기를 발판 삼아 각종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전에도 인기가 많은 유튜버가 방송 프로그램에 진출한 사례는 있었으나 펭수처럼 파급력을 보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펭수앓이에 빠졌다. 10살인 펭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이미지 출처 펭TV
이미지 출처 펭TV

펭수는 진심을 다해 위로하고 포용한다. 반대로 억울하면 참지 않는다.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눈치 챙겨’라며 독설하고 EBS 사장 이름을 아무 때나 부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헤쳐 나간다. 팬들은 강한 사람에게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 약한 펭수에게 빠졌다. 지난해 JTBC 소속 장성규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를 선언했을 때 시청자들의 큰 반향은 없었다.

여느 프리랜서 아나운서처럼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행사를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성규는 JTBC가 유튜브 채널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소속사인 ‘JTBC스튜디오’와 계약을 체결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아나운서 이미지를 완전히 버렸다. JTBC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하며 힘들면 험한 말을 내뱉거나 투정을 부리고 뜻대로 안 되면 짜증을 낸다.

바른 말을 하지 않아도 구독자들은 열광했다. 장성규는 ‘워크맨’의 인기에 편승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예능감을 펼치고 있다.

장성규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유명한 연예인들이 “워크맨 잘 보고 있다”라며 먼저 악수를 청한다.

이미지 출처 워크맨
이미지 출처 워크맨

이제 ‘여자 장성규’도 나타났다. 4차원 기상캐스터인 김민아가 장성규와 찰떡궁합을 선보였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방송계는 선을 넘나드는 김민아의 드립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연예인과 유명인이 유튜브를 만나면

많은 연예인 유튜브 채널 중에 주목할 성공 사례는 배우 신세경의 유튜브 채널이다. 신세경은 아주 평범한 내용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일상, 요리하는 일상, 여행을 다니는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꼭 나오는 맛있게 먹는 장면. 많은 유튜버들이 과식하는 콘텐츠로 눈길을 끌지만 신세경은 요리하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기존 방송 포맷이라면 분명 예쁜 표정을 지으며 맛있게 먹는 장면을 넣었을 텐데 신세경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고 어쩌면 심심할 법도 한 유튜브지만 구독자가 92만 명이 넘는다.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은 중간 광고, PPL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회수가 높지만 광고비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비와 인건비로 고스란히 쓰인다.

백종원은 “유튜브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다”라고 말해 ‘유튜브 생태계 파괴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동안 시청자는 광고와 협찬, 쩝쩝 소리를 내며 과식하는 모습이 가득한 정체불명의 예능 프로그램을 강제 시청했다.

그러나 이제 선택지가 생겼다.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을 편안하게 보면 된다. 음식을 흘리면서 허겁지겁 먹고 말하면서 침이 튀기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백종원이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시청자의 마음은 확실히 기울었다.

이처럼 기존 방송에 지친 시청자들은 TV 대신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해 벌어진 현상이다.

성공적으로 유튜브에 안착한 방송 프로그램

KBS Joy 채널은 지난해 3월부터 ‘무엇이든 물어보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방송 시청률은 1%대 미만으로 높지 않지만 유튜브 조회수는 폭발적이다. 따라서 애초에 유튜브 조회수를 겨냥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장훈이 선녀보살로, 이수근이 동자로 분장한 것부터 웃음을 유발하지만 유튜브 성공요인은 ‘대본 없는 상담’ 콘셉트이다.

이미지 출처 무엇이든 물어보살
이미지 출처 무엇이든 물어보살

서장훈과 이수근은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한다. 때론 인생 선배로 혼낼 때도 있고 억울한 사연에는 크게 분노한다.

방송 화면과 유튜브 화면은 동일하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의 자막은 유튜브 흥행 요소가 그대로 담겼다. 인물을 이분할로 담거나 유튜브 자막으로 쓰이는 유행어를 사용한다. 제작진이 유튜브 채널을 연구한 노고가 엿보인다.

방송계는 유튜브 채널의 성장은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여긴다. 시대가 바뀌었고 IT 기술이 발달했으며 10대, 20대들은 전혀 다른 세대이기 때문에 유튜브는 앞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작진의 나태함과 안일함, 무엇보다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보다 자신들이 만들고 강요하고 싶은 콘텐츠만 쏟아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사실 시청자는 콘텐츠 제공자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콘텐츠의 내용을 보고 소비한다. 제작진의 이기심으로 콘텐츠를 부실하게 만들었으면서 ‘대세가 유튜브라서’라는 핑계를 댄다면 계속 뒤처질 것이다.

시청자와 기싸움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비극을 맞이할 것이다. 시청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고집은 방송 프로그램의 하락세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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