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21 뉴스=윤석란 기자]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고착화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고 '리레이팅(Re-rating)' 시대를 맞이할지 기로에 서 있다. 주주 가치 제고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은 이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외 증권가는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한국 기업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거 단기적 흐름에 그쳤던 외국인 자금 유입은, 제도적 기반이 강화되면서 장기적인 투자 추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5년 하반기, 과연 한국 증시는 오랜 염원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꼬리표를 떼어내고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새로운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액 주주 외면하는 기업 관행 비판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한국 주식시장이 다른 선진국 시장에 비해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소액 주주 권익 침해, 낮은 주주환원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모회사가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시켜 모회사의 가치가 희석되는 이른바 '자회사 중복 상장'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자회사 상장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기업은 지주회사 아래 여러 사업부를 두면서도 하나의 법인만 상장하는 '단일 구조(single-entity model)'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각 사업의 가치가 모회사에 집약되어 주주들이 전체 비즈니스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며, 단일 구조만으로도 충분한 자금 조달과 기업 가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시장의 인식이 배경이 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자회사 상장이 빈번하여 모회사의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자본 비용을 상승시키며 기업 가치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관행은 결국 기업 전반의 저평가로 이어져 국내 투자자들의 외면을 불러왔고, 외국인 투자자들 또한 한국 시장 투자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상법 개정으로 '주주 최우선' 시대 개막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통과된 상법 개정은 한국 증시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 핵심 동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회사 및 주주 이익 충실 의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는 이사가 기업을 경영할 때 단순히 회사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 증대와 모든 주주의 이익 보호를 동시에 고려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대주주 이익 편중 경영을 견제하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며,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경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상반기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 대한 매수세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이러한 제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570억원 순매수하며 4개월 연속 순매수 기조를 이어갔고, 코스피 시장에서 1,800억원대 순매수를 기록하며 증시 상승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개정된 상법과 같은 제도적 변화가 실질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전반적인 가치 재평가인 리레이팅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외국계 증권사, 한국 증시 낙관론

상법 개정을 통한 한국 증시의 '리레이팅'은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근본적인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기업 가치 평가를 달성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지향한다. 미국에서 법적 강제보다는 시장 규율과 제도 설계가 자회사 상장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처럼, 한국 역시 개정된 상법이 엄격한 시장 규율과 기관투자자,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감시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2025년 하반기인 현재, 씨티은행을 비롯한 주요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국 증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코스피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등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정부의 '밸류업(Value-up)' 정책과 상법 개정의 시너지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장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기업 경영의 실제 원칙으로 자리 잡고, 투명한 지배구조가 확립된다면, 한국 증시는 비로소 '코리아 프리미엄'의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